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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삶 걷던 몽골인 '체기', 엄마로 살기로 결심했다[국민일보]

  • 2024.02.26
  •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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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오브더칠드런, 방콕서 '아시아 그룹홈 보모 워크숍' 개최

4개 국가서 6명 그룹홈 보모 참여

"그룹홈 활동하며 보모들도 치유"

 2023년 12월 2일자 국민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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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사랑 그룹홈 보모 체렝후가 프로그램 도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지난 23일 오전 8시40분 태국 방콕의 한 호텔 세미나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인생 곡선의 움직임에 따라 보모들의 표정이 바뀌어 갔다. 바닥 가까이 찍은 점은 힘든 시절의 기억이다. 그곳으로 선을 그려가던 한 보모가 아픈 기억이 떠오른 듯 통역사를 붙잡고 '꺼이 꺼이' 소리내 울었다. 조용히 훌쩍이는 보모들도 있었다. 현장 관계자들은 그들에게 휴지를 나르느라 분주했다. 보모들 앞에 놓인 종이엔 '인간으로서의 나'와 '보모로서의 나'가 뒤섞여 몇 번의 굴곡이 그려졌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이하 라칠)은 지난 20~24일 방콕에서 '2023 아시아 그룹홈 보모 워크숍'을 개최했다. 각국 그룹홈 보모들이 모여 서로의 노하우와 비전을 나누고 보모로서의 역량도 키우는 시간이다. 태국과 몽골,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4개 국가에서 6개 그룹홈 보모가 참석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새롭게 추가됐다. 보모 스스로의 심리 상태가 안정돼야 그룹홈 아이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취지다. 보모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인생 곡선을 그려보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트라우마로 얼룩진 체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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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샤르네체첵 그룹홈 보모 체기가 자신의 인생 곡선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체기'라 불리는 몽골인 체첵델게르(55)는 '꽃이 피다'라는 이름 뜻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녀는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두 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결국 헤어졌다. 재혼을 했지만 두 번째 남편의 알코올 중독과 의처증을 견디지 못하고 또 한번 이혼했다. 그 사이 마을 남성 2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체기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닌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4명의 자식을 둔 체기는 책임감이 큰 엄마였다. 40대 중반에 자궁과 위에 문제가 생겼지만,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일을 계속했다. 자꾸 재발하는 병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의 친오빠는 아이들을 전 남편 쪽에 보내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설득했지만, 체기는 "엄마가 아이를 버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4명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졌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새 삶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지난 10월 다니던 교회에서 그룹홈 보모 제안을 받은 것이다. 누구보다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크고, 아이들을 위한 삶을 결심한 그녀에게 꼭 맞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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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샤르네체첵 그룹홈 보모 체기가 히스게와 놀고 있는 모습.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현재 그녀는 몽골 '샤르네체첵(장미)' 그룹홈에서 마를마(15), 강토야(14), 히스게(7) 세 명의 여자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오고, 자신에게 "엄마"라고 불러줄 때 더 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체기는 "정말 힘들고 굴곡있는 삶을 살았지만, 보모가 되고 난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며 "보잘 것 없는 인생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울면서 발표를 마친 그녀의 눈이 빛났다. 체기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숨기려고 했던 과거의 아픔을 나누면서 보다 자유롭고 건강해졌다. 이 마음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좀 더 사랑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눈물은 강한 치료제...보모들 더 성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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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상카부리 그룹홈 보모 다오(왼쪽)와 통역사 한나(오른쪽)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다른 보모들도 아래로만 향하던 인생 곡선이 그룹홈 일을 하면서 점차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태국 상카부리 그룹홈의 보모 다오(26)도 "어렸을 때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고 아버지의 폭력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며 "그러나 보모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오랜 꿈이었던 대학에도 다닐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도 그 과정에서 치유받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리 상담을 진행한 조성민 강사는 "눈물은 가장 센 치료제다. 보모들은 이번 심리 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의 짐을 조금 덜게 됐다"며 "보모 자신부터 심리가 안정돼야 아이 양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보모들은 앞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갈등을 보다 안정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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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훈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이사.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보모들은 이 자리에서 서로의 그룹홈 운영 방식을 공유하고, 3년 후를 위한 비전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세웠다. 프로그램 전체 진행을 맡은 김성훈 라칠 이사는 "이번에  세운 계획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성공 사례를 발굴할 예정"이라며 "다른 대륙 그룹홈과 모범 사례를 공유하며 하나의 그룹홈 원형을 만들어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권호경 라칠 회장은 '사람을 살리는' 보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권 회장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나라마다 어린이의 존엄성을 얘기하지만, 5초마다 아이 1명씩 죽어가는 게 현실"이라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보모들이 있어 아이들이 살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어 "보모 워크숍은 그런 어린이를 살리는 그룹홈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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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호경 라이프오브더칠드런 회장.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2015년 설립된 라칠은 전 세계의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 아동전문 NGO다. 이 중 그룹홈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각국 아동들에게 일반 가정 형태의 대안가정을 제공하는 라칠의 주요 사업이다. 현재 전 세계 10개 국가에 20개의 그룹홈이 라칠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중이다.


그룹홈의 핵심은 '보모의 역량'이라 보고, 정기적으로 보모 역량 제고를 위한 워크숍을 실시하고 있다. 라칠은 그룹홈  사업 외에도 아동 결연사업, 무료급식, 교육·의료·식수 지원, 지역개발 등의 해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방콕(태국)=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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