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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오브더칠드런, 케냐 고산지대 난디·마구무에서의 3일 의료봉사기

  • 2019.11.18
  • 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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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곁에 선 소녀의 배가 불룩했다. 커피색 피부, 짧은 곱슬머리의 소녀는 자신을 ‘크리스퍼’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달 아프리카 케냐 난디에 마련된 아동 전문 NGO 라이프오브더칠드런(라칠)의 ‘무료 진료소’를 찾았다. 한국 의료진에게 초음파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그는 열여섯 살이고,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이날, 임신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초음파기기 화면 속 아들을 봤다. 

 

아파도, 다쳐도…난디 사람들 이야기

“오전 7시부터 와 있었어요.” 자신이 첫 순서라고 말하는 로다(52)씨 뒤로 13명이 더 있었다. 진료 시작시간을 몰라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한 이들이었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로 8~9시간쯤 걸리는 해발 2300m의 고산지대 난디. 지난달 28일 오전 10시쯤 이곳의 유일한 의료기관 메테이테이 서브카운티(Meteitei Sub-county) 병원에 라칠의 현수막이 걸렸다. 지난해에도 이곳에 라칠이 왔던 터라 한국인 의사에 대한 소식이 난디 3개 마을에 이미 퍼진 듯했다.

 

이날은 라칠에서 계획한 이틀간의 난디 의료봉사 일정 중 첫째 날이었다. 봉사단의 주축이 된 전남 순천의료원 정효성 원장, 노형민 부장(내과), 오남호 과장(외과) 등 의료진은 병원 곳곳에 마련된 진료실에 짐을 풀었다. 유영숙, 추인숙, 박미옥, 오수진 간호사는 분주히 약제실을 정비했다. 접수대는 케냐한인교회 홍성무 목사와 김지아 전도사가 맡았고, 스와힐리어가 유창한 이태권, 안경열, 오유진 선교사는 통역과 전반적인 진행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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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 첫째 날 라칠의 무료 진료소를 찾은 난디 주민들. 대부분 오전 7~8시쯤 도착해 진료시작 시간이었던 오전 10~11시까지 약 3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이들은 봉사단이 점심식사를 할 때도 번호표를 손에 쥔 채 자리를 지켰다.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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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미옥 순천의료원 간호사, 홍성무 케냐한인교회 목사, 이태권 선교사. 라칠 제공

 

오전 11시쯤 진료가 시작됐다. 첫 환자 로다가 노 부장에게 안내된 뒤, 두 번째 순서였던 진(67) 할머니가 오 과장 진료실을 두드렸다. 거칠고 탁한 기침이 진 할머니 입 사이로 새어 나왔다. 할머니는 수차례 서브카운티에서 약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했다. 오 과장은 “폐렴이 의심된다”며 엑스레이(X-Ray) 촬영이 가능한 병원에서 다시 진찰받아볼 것을 권했다. 서브카운티는 공립병원인데도 엑스레이 촬영장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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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유진 선교사(오른쪽)와 대화를 나누는 중인 진 할머니. 폐렴 외에도 심장·다리 통증을 호소한 진 할머니는 "통증이 너무 오랜 기간 지속돼 언제부터 아팠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라칠 제공

 

같은 시각 병원 입구 쪽에는 현지에서 합류한 이대성 선교사(간 이식 전문의)의 진료실이 마련됐다. 아프리카에서 6년째 의료사역 중인 이 선교사는 이동식 초음파기기를 준비해왔다. 초음파기기는 서브카운티에도 2대가 있었다. 다만 관리 소홀로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인 게 문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난디 지역 임신부는 출산 전까지 정확한 임신주수나 태아의 건강상태를 알지 못했다. 현지 의료진이 진료카드에 숫자를 적어주면 그냥 그게 출산예정일이 됐다.

 

열여섯 살 크리스퍼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내민 진료카드에는 ‘임신 30주째’라고 적혀있었다. “30주가 아니라 32주야. 12월에 태어날 거고, 아들이란다.” 이 선교사의 말에 줄곧 무표정했던 크리스퍼가 활짝 웃었다. 그는 초음파기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 아들이 있었다. 곧이어 스피커를 타고 태아의 심장소리가 흘러나오자 크리스퍼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출산 두 달 전에야 듣게 된 아들의 소리. 미혼인 소녀는 조만간 한 생명을 홀로 책임져야 할 터였다. 엄마 손을 잡고 진료실을 나온 그에게 아이 아빠에 대해 묻자 대답 대신 무표정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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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선교사는 크리스퍼처럼 초음파검사를 받으러 온 에드나(29)에게 "임신 32주째가 아닌 34주"라고 말했다. 네 아이의 엄마인 에드나는 "전부 아들이라서 이번에는 딸을 원했는데 또 아들"이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은주 기자

 

진료 첫날에만 208명의 환자가 라칠 봉사단을 찾았다. 극심한 발목 통증을 호소했던 브라이언(14)은 이날 골절 판정을 받았다.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부러진 줄도 몰랐다고 했다. 6개월 전부터 시야가 흐릿했던 한 할머니의 한쪽 눈은 진찰 결과 이미 실명된 상태였다. 샐리(40)의 오른쪽 발목은 왼쪽보다 1.5배 정도 두꺼웠는데, 14세 때 생긴 상처가 원인이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아 부어올랐고, 정맥 부분이 눌리며 더 심하게 붓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한다. 난디 사람들은 이런 불편함과 아픔을 견디는 일에 익숙했다. 마땅한 대책이 없었으니까. 늘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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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호 과장이 브라이언(왼쪽)의 상태를 살핀 뒤 급히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그는 "통증이 컸을 텐데 그냥 참은 것 같다"며 현지 다른 병원에서의 추가 치료를 권했다. 오른쪽 사진은 샐리의 다리. 박은주 기자

 

 

1%의 생명을 위해

라칠팀은 난디 이틀에 이어 지난달 30일 마구무 지역까지 사흘간 900여명의 환자를 돌봤다. 이들 중 만성질환에 시달린 환자 대부분이 “현지 병원에 수차례 가봤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공통적으로 꼽힌 문제점은 ‘약’이었다. 약품의 종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봉사 둘째 날 만난 넬리(48)는 “10년간 지속된 질환 때문에 여러 차례 병원을 다녔지만 진통제만 주더라”고 말했다. 난디 서브카운티 병원의 한 직원이 약을 처방받고 싶다며 라칠 봉사단을 찾아오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거리였다. 엑스레이 등 그나마 의료기기가 갖춰진 병원에 가는 일도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은 이들에게는 쉽지 않았다. 노 부장의 진료실을 두드렸던 난디 주민 조셉(65)은 지난달 6일 엘도레트 지역에 있는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한 결과 폐렴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몇 차례 더 치료가 필요했지만 15㎞나 떨어진 병원에 다시 가기 어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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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부장(가운데)이 조셉(왼쪽)의 증상을 듣고 있다. 통역은 서브카운티 병원 인턴이 도왔다. 폐렴 진단을 받은 조셉은 엘도레트 지역의 '모이 티칭 앤드 리퍼럴(moi teaching and referral)' 병원에서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왔다. 박은주 기자

 

이런 열악한 상황을 피해 사립병원에 가는 것은 이들에게 꿈같은 일이다. 이 선교사는 “사설병원 응급실에서 수액과 진통제만 처방받아도 수십만원”이라며 “일주일만 입원해도 비용이 1000만원 단위로 훌쩍 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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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칠 봉사단에게 진료받는 가족을 따라 리무르 지역의 '리무르감리교회'에 모인 동네 아이들. 라칠 제공

 

의료봉사에도 한계는 있다. 청진기와 육안, 환자의 설명에 의존해 판단해야 하고 한국에서 공수해오다 보니 처방이 가능한 약도 한정적이다. 이 선교사도 “수술이 필요하거나 암 환자의 경우 잘 설명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가 의료봉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이 선교사는 “진료를 받으러 오는 수백명의 환자 중 몇몇은 증세가 크게 호전되거나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질환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경우도 있다”며 “예를 들어 결막염에 걸린 아이들은 인공눈물만 넣어줘도 편안해지고, 말라리아 환자는 초기치료만 잘 받아도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 1%의 환자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칠 해외사업팀의 조진행(34) 팀장은 “의료봉사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기본 3년 계획으로 진행된다”며 “서브카운티 병원의 경우 올해 긍적적인 변화가 눈에 띄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비해 소속 의료진이 현저히 늘어나는 등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구호활동을 통해 소외됐던 곳이 정부와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고, 지원이 늘어나고, 발전하는 것. 조 팀장은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뭉구 아쿠바리키, 헬렌!

의료봉사에 동행한 사흘동안 무수한 ‘축복의 인사’를 받았다. 무료 진료소에 왔던 몇몇 할머니 할아버지는 봉사 단원들의 손을 붙잡고 “뭉구 아쿠바리키(Mungu Akubariki·신의 은총이 있길)”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들이 받은 것은 많아야 보름치 약이었다. 그런데도 진심을 다해 신의 축복을 빌어주는 그들을 보며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축복은 아이들을 만났을 때도 이어졌다. 라칠은 의료봉사 틈틈이 난디 지역 학교와 마구무감리교회를 찾아 학용품, 간식, 바람개비 등을 나눠줬다. 아이들은 바람개비 하나에도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유난히 정이 가던 아이에게 제 몫보다 많은 사탕을 몇 개 더 쥐여주자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에서 500원쯤 할까. 내준 것에 비해 돌아온 말은 너무 커다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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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디 지역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라칠 봉사단에게 공책, 연필, 바람개비를 선물 받은 뒤 활짝 웃고 있다. 이 학교 교장 존(40)은 "정부 지원이 거의 없어 비품 부족에 시달린다"며 "아이들은 선물 하나하나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 정말 기뻐한다"고 말했다. 라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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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료원 정효성 원장이 난디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바람개비를 나눠 주고 있다. 라칠 제공

 

아이들이 받은 것은 바람개비 하나, 사탕 몇개, 공책과 연필이 다였다. 몇달이 지나면 다 사라질 선물들인데 정말 도움이 될까, 의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봉사단 마지막 일정으로 리무르 기찻길 옆 헬렌(5) 집에 갔을 때 이런 의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휠체어에 탄 헬렌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천성 칼슘부족증을 앓는 헬렌은 걷거나 뛰지 못한다. 돌 무렵 넘어졌다가 팔다리 골절상을 입었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뼈가 굽은 상태로 붙었다. 당시 하루 5000원 남짓한 수입으로 생활하던 헬렌 가족에게 치료비는 큰 부담이었다. 현재 헬렌은 걷기 등 상태 호전을 위한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그런 헬렌을 위해 라칠은 올해 초 모금활동으로 휠체어를 마련했다. 진통제도 꾸준히 지원되고 있다.

 

리무르에서 만난 헬렌. 헬렌은 라칠 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에 가족의 도움을 받아 집 인근 주차장까지 마중 나왔다. 헬렌의 고모 로다는 "헬렌이 처음 휠체어에 탔을 때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현재는 매우 기뻐한다"며 "가족들도 헬렌을 업거나 안고 외출할 때보다 훨씬 편해졌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헬렌의 상태를 살핀 뒤 "수술은 어려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라칠 제공

 

이제 헬렌은 마음껏 웃고, 유치원에 간다. 케냐에서 10년 가까이 선교사역 중인 이태권 선교사는 “지난해 만났을 때만 해도 헬렌은 온몸의 통증 탓에 쉴 새 없이 울곤 했다”고 말했다. 헬렌의 고모 로다(19)는 “휠체어 덕분에 헬렌이 어디든 갈 수 있다. 헬렌에게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며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작별인사 전 헬렌에게 휠체어가 생겨 행복한지 물었다. 수줍음이 많다는 이 선교사의 설명대로 헬렌은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파일럿이 되고 싶니?” 다시 한번 묻자, 이번에도 헬렌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밖에 나갈 수 없던 아이에게 꿈이 생겼다. 실현되고 말고는 중요치 않을지도 몰랐다. 헬렌이 이 다음의 삶을 꿈꾼다. 그거면 충분했다.

 

난디·리무르(케냐)=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기사 확인하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920402&code=611718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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